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모리아 왕조 (문단 편집) === [[테오필로스]](829~842) === [[테오필로스]]의 13년 치세는 아랍과의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시칠리아와 동방 전선에서 연이은 전쟁을 벌여 승패를 주고받았다. 830년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마문]]이 아나톨리아를 침공하자 친히 출정하여 방어했으나 패배하였고, 타우루스 산맥의 요새 몇 곳을 상실했다. 831년 보복 차원에서 킬리키아를 공격하여 타르수스를 함락하고, 아랍인 중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자들을 추방했다. 833년 알 마문이 카파도키아를 공격하여 파괴하자, 더 이상 전쟁을 이어가봐야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금화 10만 개와 아랍인 포로 7천 명을 석방하는 대가로 평화 협약을 체결했다. 836년 불가리아와의 20년 평화 협약이 끝나자 트라키아 북부를 유린했다. 이에 [[프레시안 1세]]가 보복에 나서 카반 이스불을 파견해 필리포폴리스 인근에서 동로마 제국군을 격파하고 필리포폴리스를 점령했다. 이리하여 불가리아는 건국 이래 처음으로 [[백해]] 연안에 이르렀고,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테살로니키 사이의 육로를 차단했고, 테살로니키 근처의 슬라브인들은 불가리아의 산하로 들어갔다. 테오필로스는 이에 맞서 842년 세르비아 부족들을 부추겨 자치국을 세우게 했다. 프레시안 1세는 이를 토벌하고자 세르비아를 전격 침공했으나 3년간의 전쟁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845년 별다른 영토 변경 없이 평화 협약을 맺기로 합의했다. 한편, 테오필로스는 837년 [[테오포보스]] 장군을 앞세운 7만 대군을 이끌고 메소포타미아 북부를 휩쓸었고, 사모사타를 함락하였으며, 멜리테네([[말라티야]])를 조공 도시로 만들었고, 칼리파 [[알 무타심]]의 출생지인 소조페트라를 폐허로 만들었다. 838년 알 무타심이 8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테오필로스는 다지몬에서 알 아프심의 부하 알 아프산과 맞붙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테오필로스가 죽었다는 헛소문이 도는 바람에 동로마군이 패배했고, 그 여파로 앙카라가 함락되었다. 아랍군은 앙카라에서 집결한 뒤 아모리움을 포위해 2주만에 함락하고 7만에 달하는 시민들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삼았다. 하지만 알 무타심은 내부 반란 때문에 본국으로 귀환하였고, 가혹한 숙청을 강행해 다지몬 전투에서 승전을 거둔 알 아프신을 죽인 뒤 얼마 안가 병사했다. 842년 1월 20일, 테오필로스는 중병에 걸렸다. 이때 다지몬 전투 때 자기가 죽은 줄 알고 황제를 칭했다가 나중에 취소했던 [[테오포보스]]가 또 다시 반란을 일으켜 어린 아들 [[미하일 3세]]를 위협할 걸 우려하여, 그를 처형하게 하였다. 그는 테오포보스의 수급을 본 직후 눈을 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